이유재 /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전문직 가진 중산층 출신들
독일내 한인타운 형성 주역
이민 목적 이주도 증가 추세
동등 입장서 獨사회 논하고
문화 격차 크게 느끼지 않아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 LA, 일본 오사카, 영국 뉴몰든 등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한인이 제일 많이 산다는 독일에는 코리아타운이 지금까지 없다. 1960~70년대 노동이주자로 온 광부들이 탄광촌인 중부독일 루르지방에 몰려 살았지만 3년 계약이 끝난 후 전국적으로 직장을 찾아 흩어졌고, 간호사들은 대학병원과 인력이 부족한 지방병원에 많이 투입돼 집단적인 정착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많이 변했다. 유학생들이 대도시 중심으로 모이고, 한국 기업들이 금융도시이면서 국제공항이 있어 교통이 편한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주재원, 서비스 업종들이 한인 인프라를 형성했다. 전형적인 코리아타운처럼 하나의 거리에 몰려있지는 않지만 프랑크푸르트 부근 에쉬보른, 슈발바흐 쪽에는 한인 호텔, 식당, 슈퍼, 미장원, 병원, 교회, 한글학교, 어린이 학원 등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이 새로운 이주자들은 산업화 시대 노동이주자와 달리 전문직을 가진 중산층 출신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애초부터 이민을 목적으로 독일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하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지 않고 독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유학생 출신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이러한 한인들은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한인교회에 다니고, 한국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한국어 안내판이 붙은 백화점을 다니니 독일어를 하나도 못 해도 거의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다. 이런 현상을 독일 사회로의 통합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서 이민조건이 북미나 다른 유럽나라보다 관대하다 보니 독일을 이민목적국으로 선택하는 한국사람들의 수가 최근에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약간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독일을 선택하는 젊은 부부들은 무엇보다 수준 높지만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 공교육 시스템, 안정적 직장생활, 그리고 튼튼한 복지사회를 이민 목적국으로서 독일의 매력으로 꼽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이민을 생각하게 만드는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 돈벌이를 우선적 동기로 하였던 노동자들과, 선진국에서 하나라도 더 배워 조국개발에 이바지하려던 유학생들과는 달리 오늘날 이주자들은 독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독일과 한국을 비교할 때 불편하고 비합리적이고, 혁신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느린 행정 시스템, 소비자에게 친화적이지 못한 환경 등에 대해 거의 모든 한인 이주민들은 이주 초기에 불만을 터뜨린다. 독일 사람들은 시간도 잘 지키고, 정밀하고 정확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이들의 원칙주의나 부족한 융통성을 직접 겪으면서는 숨이 막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손님이 왕이라는 모토 아래 소비자의 편의를 최우선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국에서 사회화된 사람들은 독일 사회에는 왜 서비스 정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독일을 바라보는 눈도 3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동등한 입장에서 독일 사회의 편함과 불편함을 논한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겪지만 사회적 차별은 노동이주자들에 비해서는 확연히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격차도 이제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사회에 대한 탈피가 이민을 실행하게 된 주요 동기였지만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과 이주자가 정착에 필요한 능력은 한국에서 기른 것이다. 이들이 독일 한인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