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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 35년 만에 무죄고국이 그리워 찾아왔을 뿐인데 … 간첩으로 몰려 처벌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 후 1년 만에 법원에서 무죄 선고
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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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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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70~80년대) 공안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간첩조작사건’ 중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그 진실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김우철·김이철 형제 간첩조작 의혹사건’이다.

1970~80년대 발생한 재일교포 관련 간첩사건들은 재일교포가 국내에 있는 가족, 친지들과 일상적인 왕래를 통해 교류한 사실이 빌미가 돼 간첩으로 조작돼 처벌받은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 사건 또한 모국방문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일교포 김우철이 간첩혐의로 인해 처벌받은 사건이었다.

진실화해위는 2009년 3월 17일 34년 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의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유족측은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따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었다.

이후 광주고법 형사 3부(장병우 부장판사)는 2009년 10월 13일 군사독재 시절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간첩 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고(故) 김우철ㆍ이철 형제의 유족이 '재판 결과를 바로 잡아 달라'며 낸 재심 청구에 대해 "이유 있다"며 재심 개시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경찰 수사관들이 1975년 피고인들을 영장도 없이 불법 연행한 후 16일간 불법 감금한 상태에서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며 이번 사건은 수사관들이 죄를 범했는데도 공소시효가 지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심 판결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 3부는 2010년 1월 2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김 씨 형제에 대해 "간첩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5년 당시 경찰수사관들이 피고인들을 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강제연행한 뒤 목포의 한 여관에서 16일간 불법감금 상태로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증거능력 또는 신빙성 없는 증거를 기초로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김우철(당시 58세)이 1973년부터 재일교포 모국방문단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해오던 중 1975년 2월, 주변 지인의 제보로 동생 김이철(당시 51세)과 함께 경찰에 불법 연행된 후 온갖 고문과 협박을 견디다 못해 허위 자백,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은 사건을 말한다. 이들 형제는 당시 법원에서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우철씨는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 동생 김이철씨는 징역 3년6월에 자격정지 3년6월을 각각 선고받아 만기복역 후 출소했으나, 이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사망했다.

이후 김 씨 형제의 자녀 6명과 친인척 5명 등 남은 가족들은 '간첩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해오다 작년 3월 진실화해위의 권고 결정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었다.

이번 판결로 고인인 된 김우철·김이철 두 형제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며, 그동안 고통 받고 마음에 큰 상처를 앉고 살아온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랄뿐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당하고,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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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92,94차 전원위 진실규명 결정문 요약>

□  김우철ㆍ김이철 형제 간첩조작의혹 사건


가. 진실화해위원회는 ‘김우철ㆍ김이철 형제 간첩 조작의혹사건’을 조사한 결과, 모국방문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일교포 김우철을 경찰이 불법연행한 뒤 범죄사실을 허위로 조작해 동생 김이철과 함께 간첩으로 처벌한 사실을 밝혀냄

나. 진실화해위원회는『판결문』,『재소자 신분장 카드』,『수사ㆍ재판 기록』 등 사건과 관련한 자료조사와 김씨 형제의 가족, 친ㆍ인척 및 당시 목포경찰서 수사관 등 참고인 진술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조사함

다.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김우철(당시 58세)은 1973년 광복절 기념 재일교포 모국방문단 일원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후 1975년 2월 체포될 때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함

라. 김우철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족과 친ㆍ인척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전하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돌보는 등 여느 교포와 다를 바 없는 일정을 보내던 중 1975년 2월 13일 주변 지인의 제보로 동생 김이철(전남 강진, 당시 51세)과 함께 경찰에 불법 연행됨

마.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5년 동안 복역한 전력이 있는 제보자는 우연히 김 씨 형제를 만난 사실이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평소 알고 지내던 목포경찰서 경찰에게 ‘김우철이 정부에 대해 불순한 말을 했다’고 제보를 한 것으로 밝혀짐

바. 경찰은 김 씨 형제를 영장 없이 16일간 경찰서 인근 여관에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은 채 물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했으며, 심지어 “삼족을 멸한다”, “늙은 노모까지 찢어 죽인다”며 간첩행위에 대해 자백할 것을 강요함

사. 또한 경찰은 김 씨 형제의 4촌 등 친․인척들을 영장 없이 10여 일 동안 불법 구금한 채 ‘김우철로부터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들었다고 인정하라’며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일부에게는 폭행은 물론 석방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해 당시에는 큰돈인 100만원을 수수하는 등 불법을 자행함

아. 이에 따라 김우철은 사촌동생(조총련 산하 조선신보 편집국장)의 지령을 받고 한국에 잠입하여 각종 정보를 수집ㆍ전달하고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김이철은 형 김우철의 간첩활동을 방조하고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됨

자. 이후 김우철은 광주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 경찰조사나 재판과정에서 진술한 것은 모두 고문과 구타에 의한 허위자백이며,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도 목포경찰서 수사관들이 3~4차례 찾아와 재판정에서 전부 인정하지 않으면 ‘팔순 노모까지 잡아넣겠다’고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범죄사실을 인정하였다고 진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차. 김이철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해 간첩행위는 고문으로 인해 허위로 자백한 것이며, 제보자를 직접 만나 진실을 밝히겠다고 대질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를 경찰들이 거부했다며 혐의 전체를 부인하였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음

카. 결국 김우철은 국가기밀 탐지 등 간첩 혐의로 징역 10년(자격정지 10년), 김이철은 징역 3년 6월(자격정지 3년 6월)의 중형을 선고 받고 만기 복역 후 출소함

타. 출소 후 김우철ㆍ김이철 형제는 경찰로부터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하다 사망하였고,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오명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함

파. 1970~80년대 발생한 재일교포 관련 간첩사건들은 재일교포가 국내에 있는 가족, 친지들과 일상적인 왕래를 통해 교류한 사실이 빌미가 돼 간첩으로 조작돼 처벌받은 사건이 대부분임. 이 사건 또한 모국방문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재일교포 김우철이 간첩혐의로 인해 처벌받은 사건임

하.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할 것과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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