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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해체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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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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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천/ 매스서부한인회장

시몬 드 보부아르 소르본에서 철학을 공부함.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를 사랑하고 연애를 계약한 여자.
혁명의 강 볼가의 뱃노래가 불릴 때 라이프니츠를 탐구하고1929년 그의 연인 사르트르에게 1등을 넘기고 최연소 철학 교수로 popularize가 되었다.
그들의 아지트 플로어에서 달콤한 밀크티를 마시고 가늘게 실연기 태우며 써 내려간 제2의 성으로 초대받은 여자였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남성이 여성에게 신비함이라는 잘못된 아우라를 주입해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만들었다 했다.
말년에 그녀는 위기의 여자로 돌아와 있었다.

질퍽한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할 줄 아는 여자 보부아르였다.
이는 벌 것 아닌 것 같으나 쉬운 일이 아니다. 1986년 폐렴이 그를 데려갔고 몽파르나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 계약자들이 가고 없는 지금, 조지 오웰이나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등 20세기를 풍미한 지상의 보헤미안이라 감히 평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부고 같은 활자를 뒤적이다 보면 척추로 세대를 연결한 586 따라지 인생은 뭐였나 싶어질 때가 있다.
메모리가 부족한 시대를 살면서도 사람의 여린 맛이 남아있던 때와 입속에서 메스가 품어져 나오는 이 시대는 여러모로 다르다.
노동을 돈으로 사고팔던 부르주아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이 속성은 비간섭성과는 달라 정신을 분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태어나서 사라진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공정이나 균등은 냉전의 흑백과 무엇이 달라서가 아니라 다수의 흐름이 이끌어온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무화하는 것이 아니며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나의 몸은 지금 여기 이곳 이 시간에 머물러 있으나 생각은 프랑스혁명 당시 방직공장에서 수의를 짜던 직조공 두 소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
변화는 불평등과 격차로 생겨난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주권이 절대다수인 국민에게 있는데, 어찌하여 빈부의 격차나 삶의 질이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뭔가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확장은 지엽이 아니라 거국이다.
너무 크면 형체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를 추정하는 문명을 우리는 이루었다.
하여, 체제는 생각이 변모한 발전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내가 성장함으로 얻는 것이며
경쟁 사회에서 타인이 나를 성장시킨 게 아니다. 물론 집체 교양이나 전문성의 동질적 도약은공존하는 사회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인문학의 과제는 노동자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아니라 왜 땀을 흘리며 휴식해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대상과 그 대상을 보는 나도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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