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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목가구의 따스함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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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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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식 / 전 고신대 총장

자연의 본성 거스리지 않는 소박미
저마다 지닌 고유한 멋 또한 일품
엄격·화려한 중·일과는 다른 깊이

   
 

조선의 공예품이 지닌 미를 발견하고 음미하며 해석한 이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와 현금의 국내외 학자들을 총망라해도 솔직히 일제강점기 미술사학자요 민예운동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만 한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전통 예술미에 대한 그의 연구는 다루었던 분야의 포괄성, 한(恨)의 민족성과 결부된 해석의 독특성, 중국·일본과 비교하여 고유성을 찾아내는 예리한 시각, 나아가 그것의 탁월성과 그 근거를 지적하는 비평의 심오함에서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주로 조선의 백자와 분청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던 그는 1935년 일본민예협회 간행지인 〈월간 공예〉 제56호에서 ‘조선의 목공예품’을 다루고 있다. 글의 서두에서 야나기는 자기에게 어느 나라 목공예품을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서양에서는 영국의 것, 동양에서는 조선의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고 했다. 왜 그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영국의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조선의 것에 대해서는 선뜻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목공예품을 최고로 꼽는 것은 단순히 자기 개인만의 기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조금이라도 예술적 안목을 지닌 이들이 조선 시대의 사랑방이나 안방을 둘러보았다면 예외 없이 조선의 목가구들이 풍기는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목가구들은 그 공간과 용도에 따라 안방 가구, 사랑방 가구, 제례 가구, 그리고 창고 및 부엌 가구 등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여성의 공간인 안방의 목가구들은 옷장, 머릿장, 좌경, 빗접, 반짇고리, 의함 등이 있는데 규수들의 취향에 따라 빛깔이 곱고 화사하며 꾸밈이 많았다. 안방 목가구들은 먹감나무와 같이 화려한 목리(木理·나뭇결)가 있든지, 또는 다채로운 자개 및 화각을 입혔든지, 아니면 은백색을 띠는 백동 장식 같은 것을 사용하곤 했다. 이 안방 가구들과 대조되는 것이 선비들의 사랑방 가구이다. 사랑방에는 의걸이장, 약장, 돈궤 같은 것도 있지만 학문을 하는 선비의 삶에 맞게 서안이나 경상, 책장, 사방탁자, 문갑, 연상, 고비 등 문방 가구가 중심이다. 조선 선비들의 청빈하고 검박한 삶을 보여 주듯 목리가 아예 드러나지 않도록 흑칠을 했거나 아니면 소박한 목리만 드러나게 했을 뿐, 못의 사용이나 꾸밈을 피하고 가능한 나무들이 서로 맞물리는 사개물림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오늘날은 이런 목가구들을 기업들이 기계적 제작 라인에서 대량생산하여 진열해 놓은 시장에서 보고 구입하는 실정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전부 주문 제작이어서 주문자들의 실용적 기호와 미적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조선의 목가구들은 사람의 얼굴처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도 각각의 특징들이 있고 고유한 멋이 있다. 게다가 그것들은 긴 세월 동안 규수들이나 선비들과 같이 살아왔고 그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따라서 조선의 가구들에는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고 사람 냄새가 난다. 특히 사랑방에 머물러 있던 문방 가구들은 한결같이 단아하고 질박하며 기품이 있어 영판 조선 선비의 고매한 인품을 쏙 빼닮았다.

야나기와 같은 이들도 조선 목공예의 이런 소박한 아름다움과 깊이 있는 품격에 매혹된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전통 기물들에서 발견되는 사무라이식의 섬뜩한 엄격함이나 중국의 가구에서 느끼는 권력적 위압과 허세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조선의 목가구들에는 죄가 없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물건 하나 만들 때도, 지혜를 짜내려고 하면 주저함이 많고 자아에 집착하면 고심한 자국이 드러나며 허영이 싹트면 괴로움이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장인들은 헛된 욕심에 따른 작위적인 가공을 하지 않고 한결같이 무심한 상태에서 자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만든다는 것이다. 실로 조선의 목수들은 작업할 때 나무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생김새와 무늬를 그대로 보존하려 했으며 금칠 같은 채색이나 화려한 장석 같은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조선의 목가구들은 대범하면서 편안했고, 정교하면서 튼튼했으며, 수더분하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무숲을 방안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고 선비들은 실내에서도 산수지간에 사는 격이었다. 그 목기들은 방 안에서 숨을 쉬었으며 그 숨을 쉴 때마다 오래된 목향으로 방을 그득 채웠다.

인문의 빈곤, 정신의 가난함을 보여 주는 듯 모두들 기술문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차가운 기물들 속에 살아가는 이때, 조선 목가구의 따스함이 그립다. 그런 그리움으로 수백 년 세월을 헤쳐 이제는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조선 선비의 삼층 책장을 바라본다.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문득 이것만 있으면 남은 생애가 춥지도 외롭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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