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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100년―어디로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가
이자도 도미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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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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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한국의 자국사 인식을 둘러싼 움직임을「반일」이라고 두려워말고, 자국사 인식의 탈냉전 상황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반면, 일본 속에 아직도 계속되는 한반도에 대한 우월의식은 최근의「북한」이라는 공공연한 적을 만들어내면서 더 격렬하게 분출하고 있다(「시민 우익」이라 불리는, 재일 한국 조선인에게 배타적 공격을 하는 배외주의 운동의 출현도 여기에 포함된다). -


[ 이자도 도미오 / 야마구치 현립대학교 교수 ]


   
2010년은 일본에 있어서 중요한 해이다. 우선「한국 강제병합 100년」, 그리고 전후 일본사회를 크게 규정한 「미일안보개정 50년」에 해당되는 해이다。둘 다 별개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현재, 깊이 관련되어 있는 사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한국병합은 러일전쟁을 거치며 대규모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음을 시사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미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었고, 그 결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획득하였다. 그리고 1910년에 한국을 식민지화 하면서 하나의 국가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게 되었고, 구미 열강처럼 ‘보통 제국주의국가’에 근접한 것이었다. 일본은 총독부 통치하에 한반도에 자본주의 경제와 서양문명을 주입시키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일본은 미국 세력권 아래로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노선을 대폭 정리하고 미국 측 진영에 완전히 달라붙으면서 국제적 지위 부활을 노린 것이다. 1960년의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은 그 내용을 가장 중시여긴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일 안전보장조약은 조약본문에 대해서는 일체 건드리지 않은 채 10년마다 갱신되었고, 결국 ‘미일동맹’으로 호칭될 정도로 일본의 정치체제를 강력하게 규정한 것이 되었다. 2009년 후반의 정권교체 이후, 미일관계는 오키나와의 기지문제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일본 측이 격하게 동요하는 듯 보인다(한국 노무현 정부 때의 한미관계 동요와 유사하다).

패전에 의해 일본은 강제적으로 식민지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은 일본에 역사인식문제를 동결한 채로 패전 후의 사회를 이어나가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통일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민족자결원칙은 동서 양진영으로부터 완전히 묵살되었던 것이다. 남북한 정부와 더불어 일본이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출석하는 일은 없었다. 한국전쟁이라는 격전도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필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재미 독립 운동가였고, 1960년의 군사 쿠데타에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일본 제국의 군인을 경험한 뒤 한국 군대 건설에 관여한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한미동맹관계 하에서 경제부흥에 몰입했다.

한국 강제 병합과 미일 안보는 여기에서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식민지 통치를 지지해 온 사람들이 냉전하의 한일 양국관계 속에서「반공」이란 이름하에 살아남으면서 미국이라는 우산 아래 한일 관계를 규정한 부분이 있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의해 한일 관계도 변화하는데, 무엇보다도 한국의 민주화는 무대에 섰던 사람들을 크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 하에서 행해졌던 편의적인 국교 수립은 한일 조약 - 한국 강제 병합 조약의 취급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쌍방 타협의 의미가 농후하다(과거를 값싸게 청산하려한 일본 측과, 눈앞의 개발 자금만이라도 얻고자 하던 한국 측).

아직도 계속 되는 한일 역사 인식문제는 현재의 한국에 있어서 자국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문제(과거사 청산)로 존재하고 있다. 「8월15日일은 해방의 날인가 건국의 날인가」라는 쟁점이 바로 그런 점이다. 한국의 뉴라이트가 분단국가의 현실에 고뇌하는 나머지, 식민지 근대화론까지 꺼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민지 통치의 역사와 냉전사의 Nodal Point(매듭지점, 마디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자국사 인식을 둘러싼 움직임을「반일」이라고 두려워말고, 자국사 인식의 탈냉전 상황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반면, 일본 속에 아직도 계속되는 한반도에 대한 우월의식은 최근의「북한」이라는 공공연한 적을 만들어내면서 더 격렬하게 분출하고 있다(「시민 우익」이라 불리는, 재일 한국 조선인에게 배타적 공격을 하는 배외주의 운동의 출현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토야마 내각은「외국인 참정권 법안」을 제출하려고 하는데, 이 사안은 위와 같은 문제를 포함하여 격렬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국회에서 불거져 나오는 각 정치가의 논쟁이야말로 전후의 일본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로 성숙해졌는가를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일 양국의 시민들은 이 논쟁에서 어느 정치가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를 명기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 출판사인 이와나미(岩波)서점이 자사의 두 종류의 잡지(시사 논단지『세계』와 학술지『사상』)에서 「한국 병합 100년」을 특집으로 게재했다. 식민지 통치 관계 연구에서는 최근 많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일 양국이 고뇌하는 역사 인식 문제도 아마도 문제의 골자는 역사 인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연구해 온 결과나 그 성과가 잘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의 연구와 상호 협력에 의한 교육교재의 개발 등, 다양한 형태로 서로 다가가기에 대한 모색이 시행되어져 오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성과가 교육면에서 받아들여질지 어떨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은 걸릴 것이다. 성급히 하다가는 오히려 반발만 늘어날 수도 있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의 공통 교과서도 ‘제1차 세계대전’ 때 제안되어, 최근에 와서야 겨우 만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차분히 냉철하게 서로 다가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웃나라이기에 결점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현재의 인적 물적 교류를 토대로 하여 강력한 한일 관계 구축을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영토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된 1905년에 일본이 영유를 선언한 독도(다케시마)문제는 아마도 한일 양국민에 있어서도「상호간의 일부 양보」를 하는 형태로 밖에 해결할 길이 없을지 모르겠다. 국경선을 확정하지 않으면 향후 반복되어 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있다. 영토분쟁은 평화적 해결만이 필요하다. 무력으로 탈취하면 무력으로 보복을 하려는 반복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국교 수립을 위한 대담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그 때 한일 기본조약도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한일 국교 수립 때, 조약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결정한 이상, 이 조문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일정부가 단순히「같은 미국 산하」가 아닌 독립적 관계를 구축하려면 거기에 맞는 대가도 필요하다.「한국 병합 조약은 전부 무효」라는 말도 포함한 역사적 경위의 청산과 새로운 관계 수립은 언젠가 한반도의 통일 국가라는 국교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하여 처음으로 ‘한국 강제 병합 100년’과 ‘미일 안보 50년’은 새로운 시대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번역 - 이수경 / 도쿄 가쿠게이대학 교수)


※ 이자도 도미오 교수 : 큐슈대학교 법학 박사. 일본 정치학 전공. 현재, 야마구치 현립대학교 재직 중. 국내에는 「끝나지 않은 20세기]라는 책 등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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