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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공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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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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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영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최근까지 정치의 계절이 올 때마다 논쟁거리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이른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교차하여 집권하는 과정에서 산업화 세력은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집권하려는 전략을 구사했고, 민주화 세력은 유신독재라는 커다란 정치적 과오와 그것이 경제에 남긴 부정적 유산을 부각했다.

경제학자들도 진영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참여적 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논리로 경제 자료를 채색하는 일에 능숙했고, 분석가들은 박정희 체제의 경제 성과를 강조하면 한나라당 지지자가 되고, 부정하면 민주당 지지자가 되는 상황을 기피했다.

외국의 석학들도 경제학 내부의 이데올로기 싸움의 포로가 되었다. 박정희 집권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의 연평균 성장률은 7%를 기록했다. 지금은 중국의 눈부신 성과로 다소 빛이 바랜 수치지만 당시로는 전후 패전국을 제외하면 관찰하기 힘든 높은 성장률이었다.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발전 방식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추천하는 방식을 크게 이탈한 것이었다. 정부가 육성할 기업을 선택하고, 국유화된 은행을 통하여 저금리로 자금을 몰아주고, 높은 무역장벽으로 보호하며 동시에 각종 보조금으로 집중 지원하는 체제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일제의 산업정책과 닮았고,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현재의 중국 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 맡기고 자유무역을 해야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 기적과 국가자본주의의 공존에 당황했다. 그래서 희한한 주장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국가의 강력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달성된 것이며 시장에 맡겼더라면 더 높은 성장률을 이룩했을 것이라고. 동시에 한국은 오랫동안 보호무역을 유지했지만 동시에 수출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둘의 효과가 서로 상쇄되어 사실상 자유무역을 했다는 신기한 이론도 개발했다. 이러한 주류 경제학의 입장은 국내의 학자들에게 가치충돌의 상황을 만들었다. 시장주의를 받아들이면 박정희 체제를 칭찬할 수 없는 우파와 시장주의를 공격하다 보면 박정희 체제의 성과를 인정하게 되는 좌파의 상황을.

필자는 박정희 체제에서 경제 기적이 발생한 핵심 원인은 해외자본을 차입하여 선진국의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입하고 수출 산업을 단계적으로 육성하면서 수출 대금으로 차입금 이자를 지불하고 더 많은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입하는 순환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근의 경제성장 이론은 중간재와 자본재의 종류와 질을 확대하고 개선하는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핵심 소재, 부품, 장비, 설비의 생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다. 차입과 수출은 신흥국이 이들을 서둘러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해외의존형 개발 체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과거 식민지 국가가 선택하기 매우 어려운 체제였다. 과거의 식민지 본국에 의존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 시장은 아직 닫혀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립 국가들은 해외의존형 개발을 피하고 민족주의적 자립경제의 길을 택했고 그 결과 저성장의 길을 밟았다. 우리의 대부분 지식인들도 마찬가지 입장에 있었다. 집권자의 강력한 개발 의지, 전택보와 이병철 같은 선구적 기업인, 동아시아 경제를 반공의 전선으로 키우려고 했던 미국의 안보 전략이 마주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도 같은 길을 갔을 것이다.

비록 박정희 체제가 높은 성장을 제조했다 하더라도 후대의 기업 양극화, 노동 양극화, 지역 양극화의 깊은 뿌리가 되었기에 공보다 과가 더 많다는 주장은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고, ‘경로 의존성’이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그러나 박정희 사후 40여년이 지난 현재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후대의 정부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물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 세력은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태어났고, 민주화 세력은 고도성장을 탄생시킨 독재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와 민주화의 신화를 이룩한 두 세력은 모두 기득권이 되었다. 이제 상대편의 역사적 과오나 우리편의 역사적 공로가 저절로 나의 표로 연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서로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고 우리의 미래에 놓인 벅찬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경쟁을 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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