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언론인, 편지 편집위원 ]


재미 한인 사회가 한국 정부를 향해 참정권과 함께 이중 국적요구를 해온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그 때문인지 한국 정부는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을 마련하고 2012년부터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효성도 문제지만 내용자체가 속빈 강정이다.

현재, 재외국민 투표는 장소가 재외 공관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투표권 자가 참정권 행사를 위해서는 공관을 두 번에 걸쳐 방문해야 한다. 유권자 등록을 위해 한번 그리고 투표를 위해 다시 한 번 공관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공관까지 거리가 장난이 아닌 유권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비행기를 타고 공관을 찾아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과연 이 같은 현 여건에서 두 번씩이나 공관을 찾아가며 투표권을 행사할 재외 국민들이 몇이나 될지 의문스럽다.

재외 국민 참정권 법안을 마련해 놓고 마치 해외 동포들에게 엄청난 선심이아 쓰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꼴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식사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웃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중국적 즉, 복수국적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중국적이라는 용어도 복수국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복수국적 허용 대상은 선천적 복수국적자, 외국인 우수인재, 그리고 65세 이상 된 영주귀국 고령자 등이다. 또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원정출산의 경우는 복수국적을 허용치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그동안 재미 동포들이 요구해온 이중국적을 한국 정부가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우선 정부가 대상으로 하는 선천적 복수국적 자에 대한 의미는 입양아 그리고 부모가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외국에서 출생해 자동적으로 해당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입양아들의 경우 대부분이 한국어를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입양아들이 정부가 마련한 복수 국적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미국 시민권 자들의 2세들도 마찬가지 경우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해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이들에게는 복수국적은 별의미가 없어 보인다.

결국 실질적으로 복수국적제도의 혜택을 입게 되는 부류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부모들의 한시적 유학 또는 해외 근무 중 미국에서 태어난 자들 그리고 그동안 미국의 속지(屬地)법을 악용해 원정출산이라는 방법으로 미국에서 출생해 미국의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다. 모 정당의 대표의 경우도 자식들의 원정 출산이 문제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유명 방송인도 원정 출산의 의혹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체류 중이다. 정부의 복수국적 허용이 얼핏 보면 그동안 미주 동포들이 요구한 이중국적을 일부 수용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특권층을 위한 법안을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처럼 해외 동포들은 한국의 특권층을 위한 곰 노릇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여론을 의식해 원정출산의 경우는 복수국적을 절대로 허용치 않을 방침이라는 것도, 보통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대부분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원정출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실행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것이 원정 출산이다.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유명 방송인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언론들은 현재 그녀가 남편이 유학중인 보스턴 지역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그녀가 실제로 머물고 있는 곳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조그만 중소도시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명 골프장내에 시어머니와 그녀의 남편이 공동 명의로 지난 2005년도에 구입한 고급 주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보스턴에 머물건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건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현재도 원정출산에 나서는 부류는 한국사회의 특권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들을 향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말이다.

또 글로벌 시대에 맞춰 복수국적을 허용하면 외국 우수인재를 쉽게 확보 할 수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현재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계 두뇌들이 귀국을 주저하는 이유가 국적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일이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교수이자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정치학 박사 김세진 씨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시민권 자였던 김 박사는 한국의 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해 귀국 자체를 꺼렸다. 박 대통령은 일단 1년간 미국시민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북한문제연구소’ 소장직을 맡아 일을 해 본 후에 시민권을 포기할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후 김 박사는 시민권을 포기하고 국적 회복 절차를 밟은 후 뉴욕 총영사에 임명되었다. 운영의 묘를 살린 경우이다.
여하튼 문제는 국적법개정안이 해외동포들보다는 한국의 특권층들을 위한 법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외동포사회를 우롱하는 듯한 한국 정부의 행태가 이제 제발 막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