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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식스토 김, 아버지는 독립유공자 김동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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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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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서 독립운동자금 송금했던 독립유공자 후손에 건국포장 전수
아들 식스토 김 "한인 후손이라 자랑스럽다…아버지 모범 따를 것"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 아들 식스토 김

멕시코 메리다의 한인이민박물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에 추서된 건국포장을 전수받은 아들 식스토 김 칸체(89)가 옛 가족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가운데가 김동순 선생이고 그 앞 어린 소년이 식스토 김. [사진 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2021.3.22.]

아버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외딴 마을에 살며 학교도 다니지 못한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낯선 모국어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자주 인근 큰 도시로 가서 고향 사람들을 만났다.

아버지가 고향 사람들을 만나 바다 건너 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머리를 맞댔고, 힘겹게 번 돈의 일부를 고국에 보냈다는 것, 그래서 모국 정부가 아버지를 위한 포장(褒章)을 마련해 놓고 건네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건 아주 뒤늦게야 알았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김동순 선생에게 추서한 건국포장을 서정인 주멕시코 대사로부터 받아든 아들 식스토 김 칸체(89)는 떨리는 목소리의 스페인어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매우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김동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2년 만에 전달된 포장이었다.

김동순 선생은 116년 전인 1905년 에네켄(선박용 밧줄 등을 만드는 선인장의 일종)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멕시코로 건너온 한인 1세대 이민자 1천여 명, 이른바 '에네켄'(애니깽) 중 한 명이었다.

1892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와 함께 멕시코행 배에 올랐고,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사실상 국권을 잃은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다른 이들과 함께 멕시코에 남아 뿌리를 내렸다.

   
▲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 김동순 선생 후손]

그를 비롯한 멕시코 1세대 이민자들은 각 지역에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조직해 민족혼을 지키려 했고 노예와 같은 고된 노동으로 힘겹게 번 돈을 모아 독립자금으로 송금했다.

우리 정부는 지구 반대편에서 독립에 힘을 보탠 이들에게 훈포장을 추서하고 있는데, 김동순 선생도 그 대상자 중 하나였다.

메리다지방회장을 맡아 3·1절 기념식 등을 진행하고, 1912∼1945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것이 옛 기록을 통해 확인되면서 2015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이후 5년간 포장을 전수할 후손을 찾지 못했다가, 멕시코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에 앞장선 한인 후손들과 국내외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아들 식스토 김을 찾았다.

고령의 아들은 50여 년 전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마누엘 김 이'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그를 찾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지난해에야 알게 된 식스토 김은 "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메리다에 있는 한인회관에 가서 다른 한인들과 자주 모였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다.

유족들에 따르면 김동순 선생은 현지 마야 여성 세베리아나 칸체와 결혼해 9명의 자녀를 뒀다. 현재 다섯째인 식스토 김을 포함해 3명만 생존해 있다.

김동순 선생은 메리다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융쿠'라는 마을의 에네켄 농장에 정착해 살았다. 마을엔 학교가 없었고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 대신 에네켄 농장으로 나갔다.

식스토 김은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은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자식들을 모아놓고 책을 꺼내 한국어 같은 걸 가르쳐주셨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도 아이들도 고된 하루 노동을 마친 후였고,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말을 안 듣는 식스토 김에게 아버지는 "배워놓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애국가에 맞춰 가슴에 손 얹은 멕시코 한인 후손 

멕시코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의 아들 식스토 김 칸체(89) 부부가 메리다의 한인이민박물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건국포장 전수식에 앞서 애국가에 맞춰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보고 있다.[ 사진 고미혜 특파원2021.3.22.]

식스토 김은 김치나 콩나물을 직접 만들어 먹던 아버지의 모습도 기억했다.

외딴 마을에서 모국어를 함께 나눌 사람도 없이 살았던 김동순 선생은 1969년 7월 2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3살에 떠난 고향을 평생 그리워했으나 한 번도 돌아가지 못했다.

19살에 식스토 김과 결혼해 김동순 선생의 마지막 1년 6개월을 지켜본 며느리 셀리아나 하우 술루(72)는 "다정하고 교양있고 카리스마 넘치던" 시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집에 꽂혀 있던 한글 책을 펴서 한국말로 그에게 책 내용을 설명했던 시아버지는 하나도 못 알아들은 채 배시시 웃고만 있는 19살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술루는 "시아버지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끝내 아버지의 모국어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김동순 선생의 증손녀이자 식스토 김의 조카 손녀인 켈리 알론소 김(21)은 한국의 뿌리를 기억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켈리는 "한인 후손이라는 것, 김이라는 성을 가진 것이 자랑스럽다"며 "한국의 이야기를 멕시코에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의 옛 메리다 한인회관 자리에 2007년 문을 연 한인이민박물관에서 열린 건국포장 전수식에는 식스토 김 부부와 조카, 조카 손주들까지 한인 2∼4세가 함께 자리했다.

식스토 김은 박물관에 있는 이민 1세대들의 자료를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한국인처럼 느껴진다. 한인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켈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사 왔다는 '대한민국'이 적힌 모자를 쓰고 인터뷰에 응한 식스토 김은 기자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융쿠 농장으로 와라. 무슨 일이든 도와주겠다. 난 (고국을 도운)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멕시코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 후손에 건국포장 추서

멕시코 메리다의 한인이민박물관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독립유공자 김동순 선생에 추서된 건국포장을 전수받은 아들 식스토 김 칸체(89·가운데)와 가족들. [ 사진 고미혜 특파원 2021.3.22.]

[고미혜 / 멕시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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