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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 민주화의 거성 정경모 선생 타계
이구홍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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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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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의 정경모씨 [유족제공]

1989년 고 문익환(文益煥·1918∼1994) 목사와 함께 방북했던 재일 문필가 정경모(鄭敬謨)씨가 16일 새벽 일본 요코하마(橫浜)시 고호쿠(港北)구 자택에서 작고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아들 정강헌씨는 "아버지는 폐렴으로 고생을 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당시 일본에서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김지하 석방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의 보수언론들과 그의 논쟁은 김대중 사건의 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맥아더 사령부에서 급조된 3.8선의 유래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1983년 여운형·김구·장준하 3명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의 픽션집 '운상경륜문답(雲上經綸問答)'을 펴냈는데, 이 책이 한국에서 '찢겨진 산하'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거름, 1992)돼 대학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경모씨는 미국 유학시절 프란체스카 여사의 특별요청으로 GHQ 사령부의 통역으로 소환되어 당시 주일미군 사령부 (맥아더 원수) 진영의 대한정책, 남북관계 특히 정전 회담시 한국측 대표단의 일화, 북한측 대표단의 활약상을 소상히 그려냈고 주한미사령관 하지중장의 대일편향 활동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는가 하면 GHQ에 한국의 유능한 청년 학생이 30여명 근무했다면서
이는 한반도 유사시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맥아더 사령부의 계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 1989년 방북 당시의 정경모씨. 왼쪽부터 정경모, 문익환, 김일성, 황석영, 유원호씨. 1989.3.27 [연합뉴스]

1989년에는 문 목사와 함께 방북해 북한의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4·2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기를 거부해 귀국하지 못한 채 일본에서 숨을 거뒀다. 아들 정씨는 "작년에 아버지의 귀국 직전까지 협의가 진전됐지만, 코로나19 탓에 결국 돌아갈 수 없었다"며 "마지막까지 '미국이 멋대로 그어놓은 38선을 없애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셨다"고 말했다.

2010년 신문 연재 글을 모은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 2010)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재일 한민통 인사들과 김대중씨와의 관계를 소상히 그려 내기도 했는데 이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축하연이 거행되는 자리에 한민통 인사들이 참여할 수 없었던 일화를 남겼다.

   
▲ 2014년 11월 문익환 목사의 자녀들이 일본 요코하마 자택을 방문했다. 왼쪽부터 정경모 선생의 부인 지요코 여사, 정경모 선생, 문익환 목사의 맏딸 문영금씨, 3남 문성근씨. [통일뉴스]

최근에는 한일고대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유족이 전했다. 유족은 부인 나카무라 지요코(中村千代子)씨와 슬하에 아들 정강헌·정아영(리쓰메이칸대 교수)씨가 있다. 장례는 일본에서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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