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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테스형”은 과연 누구인가?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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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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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 수필가

   
 

며칠 전에 나는 나훈아의 “테스형”이라는 신곡을 듣고서 소크라테스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다. 나훈아는 신곡“테스형”에서“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이라고 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쓰며 아주 애절하게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라며 대화형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튿날 나는 “철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듣다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 보라는 교수님의 추천을 받고 깜짝 놀랐다. 역시 무지한 내가 알아갈 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만드는 모든 사건들이 나에게 철학의 세계로 사다리타고 올라가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나는 우리학교 전자도서관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다운받아 날이 새도록 읽었다.

기원전 5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석공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철학적 이야기를 나누며 그 대화 과정에 상대방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게 되었는데 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눈에 든 가시로 여긴 소피스트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하게 된다.

고소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천상과 지하의 일들을 연구하며, 약한 입장을 강한 입장으로 변화시키면서 그런 것들을 남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나아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고소원인으로는 “나라가 인정하는 신을 안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긴다.”고 하면서 두 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하게 되는데 사실은 정치적 인기를 누리던 아니토스, 리콘 등이 멜레토스를 앞세워 사주한 짓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장에서 고소인과 배심원들에게 펼친 변론을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나중에 기록한 글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두 번의 변론으로 나뉜다.

첫 번째 변론은 배심원을 향해 자신을 변호하는 발언을 하게 되는 데, 그 변론의 첫 번째로는 자신은 청년들을 타락시킬만한 능력이 없고 두 번째로는 자신이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 다른 신을 섬긴 적이 없음을 변론 하게 된다.

두 번째 변론은 자신을 고소한 멜레토스와 대화 형식으로 변론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고소한 사람은 두 부류라고 말하면서 첫 번째 고소인은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늘 고발하던 무리들이며 두 번째 고소인은 멜레토스라고 말하면서 멜레토스에게 대화의 형식으로 변론을 펼친다.

소크라테스는 두 번의 변론을 통하여 자신이 무죄인 것을 밝히지만 결국 유죄판결을 받게 되고 급기야 사형을 선고 받게 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 골치 아픈 일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지인들과 탈옥을 도모하여 자신을 구하겠다는 계획을 듣는다. 그는“욕을 먹었다고 해서 그대로 욕지거리를 돌려줄 수도 없으며 매를 맞았다고 해서 동일하게 매로 보복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탈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는데 그때 나이가 일흔이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나서 나는 많은 철학적인 태도를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가면서 했던 행동과 말들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려고 애썼던 부분들에 가슴이 저려왔다. 수많은 질문을 하면서 했던 그의 행동들이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의 경멸과 불만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 하고 있는 다 방면 위인들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눠봤다. 결과 그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그 외 자신들이 모르는 영역에서도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보다 자신이 낫다고 말한다. 그런 탐구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고 비방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으며 그 반면에 할 일이 별로 없는 부유층 청소년들이 자진해서 그를 따르면서 지혜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사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방면에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만 땄다 하면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서도 잘난 척하기가 다반사다. 얼마 전에 한 산부인과 의사가 코로나 19에 대한 자기 소견을 의학적 근거 없이 막말한 화제가 새삼 생각이 났다. 물론 그 의사는 자기 분야 즉 산부인과에서는 어쩌면 명의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만약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보았다면 적어도 자신도 잘 모르는 코로나 19에 대하여 그런 무책임하고 무지한 언행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허구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지난여름, 아들 승헌이가 방학이 되어 한국에 잠깐 들렀을 때 지인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는 데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근처에 와있다고 하는 지인의 친구 분이었는데 결국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 분이 바로 정치를 한다는 정박사라는 분이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얼마나 아는 척하면서 침방울을 튕기며 말을 하는 지 귀가 막 먹먹해왔다.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폼이 마치 고양이가 눈을 가리고 야옹하는 격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승헌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저런 박사는 되지 말아야겠어요. 어른들 세상이 왜 이래요?”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말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서 나훈아 가수도 “세상이 왜 이래?”하면서“너 자신을 알라” 며 떠나간 테스형을 애처롭게 부르는 가 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미로에 빠져 들어간 것처럼 헤매게 된다. 그래서 날이 새도록 집중하여 정독을 끝냈는데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선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가 말한 명대사들이 머릿속에 맴돌며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는 것은 변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똑 같다”라는 말을 계속 되뇌면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이어 플라톤이 쓴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을 모두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철학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아왔던 나에게 정신적 양식이 되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나서 제 2 인생의 막이 이제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철학의 이해” 라는 과목을 선택한 것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나서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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