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요즘은 언론학(Journalism, 저널리즘) 대신 미디어학(Media studies)이라고 부르는 대학과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언론학(또는 미디어학)이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어떻게 다른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언론학자나 언론 종사자마저도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이라고도 불리는 대로 사람들 간 모든 소통을 망라한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대중매체인 언론 말고도 개인 간 소통(face to face communication )을 중요한 대상으로 삼는다. 또 언론 및 미디어의 1차 연구 대상은 메시지의 제작과 대중 전달수단인데 반하여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채널을 통하여 전달되는 메시지가 개인과 사회에 남기는 영향력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효과(impact)다.

대부분의 우리 언론인들은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면 효과는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론인 훈련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a)이후 이어져온 미사여구와 센 말을 구사하면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믿고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사실만 봐도 안다. 당연히 대부분 언론인의 태도와 자질이 그러하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멋지고 센 글을 쓰고 방송을 해도 수용자(독자, 시청자, 청취자)의 심리적, 사회적 상태에 따라서는 전혀 엉뚱한 효과를 가져오거나, 효과를 전혀 못 내고 막대한 돈과 시간 낭비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눈 뜬 사람은 모두 해먹는 사회인데도 말로만 양심과 정직만을 설파한다면 후자의 경우다.

언론의 ‘마취적 역기능’

왜 나는 또 눈길을 끌지 못할 딱딱한 토픽으로 칼럼을 시작하는가? 현대 언론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라자스펠드(P. Lazarsfeld와 외, 1948)가 착안한 ‘언론의 마취적 역기능(Narcotizing dysfunction)’이란 개념을 소개하고 한국 언론이 즐기는 비리 폭로가 사회변화에 크게 기여 못하는 현실에 연결시켜 보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마취적 역기능’이란 이런 것이다. 술을 자꾸 마시다 보면 웬만큼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이솝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도 비슷하다. 늑대가 온다고 늘 경고만하지 대안을 내놓지 않거나 내놓아도 하나 마나면 상대는 무감각해지고 만다. 우는 어린 아이에게 호랑이가 온다고 늘 겁을 주면 나중에는 잘 믿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요즘 한국의 언론매체, 그 가운데도 유튜브 방송은 매일 비리를 폭로하고 질타하지만 대안은 없으니 대중은 재미로 보는 구경꾼으로 바뀌고 만다.

한국 언론과 대중연설가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한다”와 같은 구절을 밥 먹듯 써왔다. 이 또한 대중을 마취시킨다. 한국인들은 뼈를 몇 번이나 깎았을까? 제대로라면 이미 닳아 없어졌어야 맞다.

이 점은 서구 언론도 약간은 같다. 언론사들은 폭로 기사를 큰 실적으로 치는 특종(Scoop, Breaking news) 경쟁을 벌인다. 그리하여 폭로 저널리즘(Expose journalism)이란 보도 장르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거기는 우리보다 대안을 위해 의견이 더 모아지는 편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위기가 올 때마다 전쟁을 정말 걱정하는 사람은 멀리 있는 교포이고 고국의 현장에 있는 동포들은 아니라고 한다. 전쟁 위기 보도를 하도 많이 보고 들어 그들은 위기에 무감각해진 게 분명하다. 역시 언론의 마취적 역기능이다.

앞에서 수용자의 처지를 언급했지만 비리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라면 대어급 비리가 터져도 “세상은 그런 것 아닌가?” 라던가, “어디 그 사람뿐이랴,” 심지어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 오는 사례다. 더욱 그런 부정을 저질러도 돈과 힘이 있으면 “의원님” “회장님” “힘내십시오” “파이팅”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는 사회라면 말할 것 없다.

유튜브에 나오는 한 논객은 지금은 ‘사기꾼들의 전성시대’ 라고 말했는데 그 많은 스캔들 보도는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한 것일까. 폭로 보도가 필요 없다고 말 하는 게 아니다. 보도의 효과는 사회라는 총체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회는 진공관이 아니다.

대부분 한국의 종합대학들이 언론학과, 미디어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관련 석·박사 과정과 일부는 미디어 또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그런 심층적 학술 연구를 어느 학자가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해외에 살면서 현지 일이나 잘하지 왜 멀리 떨어진 고국에 관심을 갖느냐고? 그렇지 않다. 고국은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특히 서방 지역 한인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게 거기다. 한 가지만 사례로 들겠다. 거기 한인 1세들의 매체 사용 패턴(Use pattern of media)은 현지 매체가 아니라 고국에서 날라 오는 한국어 텔레비전 생방송과 유튜브와 역시 거기에서 오는 간행물을 더 많이 보고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