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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밭골과 봉오동
허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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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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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 재중칼럼니스트]

산지가 많은 연변과 함경도 일대는 봇나무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기에 불쏘시개로 부엌 한구석을 차지하였다. 옛적부터 북방은 주기적으로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며 밭농사를 지어왔기에 산불이 난 빈터에 먼저 찾아와 빠른 속도로 자라며 군락지를 이루어 독특한 마을풍경을 펼쳐보였다.

들창을 열면 물구지떡 내음새 내달았다
쌍바라지(벽에 난 창 구멍) 열어제치면
썩박나무 썩은 냄새 류달리 향기롭다
뒤산에도 봇나무
앞산두 군데군데 봇나무
주인장은 매사냥을 다니다가
바위틈에서 죽었다는 주막집에서
오래오래 옛말처럼 살고 싶었다

연변과 함경도 시골풍경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리용악의 시에는 그 옛날 두메산골의 정취가 가득 배여 흘러나온다.

   
 

봇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나무껍질이 흰색이며 종이처럼 벗겨진다. 방부제 비슷한 성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지여있어 나무를 깎아 옛날에는 묘표로 세웠으며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봇티(함경도 방언 봇나무껍질)로 감싸서 관 속에 넣었다. 청나라와 로씨야, 일본의 온갖 시달림 속에서 두만강 류역을 밀고 들어온 선인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가시덤불 길 곳곳에는 조상들의 골회를 가슴에 품고 들어와 멜레(함경도 방언 이장)한 묘지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다녔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 옛날 산에 봇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봇밭골로 전해오는 땅이름이 연변에 수두룩하게 널리여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920년, 홍범도부대가 일본군을 대패시킨 곳을 오늘날에 와서 봉오동으로 표기되여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오랜 옛적부터 명칭은 봇밭골로 불리여왔다. 함경도 온성에서 왕청 도투묵은데 치시골(북봇밭골 상촌 세고래붙이에서 7~8리 떨어진 장대)에 이주하여 5년 동안 동년을 보내고 1930년대초에 달라자로 옮겨 살았다는 정씨할아버지는 지금의 봉오동과 고려툰을 북봇밭골과 남봇밭골로 불러왔다고 전한다. 지신 달라자의 집 지붕도 봇나무껍질로 덮었기에 달라자마을에서는 택호를 봇집이라고 붙여왔고 할아버지의 선친이 창으로 곰을 잡아 곰선달로도 린근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봇밭골 땅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세기초 일본 군사지도에 나타난다. 봇밭골의 줄임말 봇골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 봉오동(凤梧洞)으로 적고 오랜 세월 동안 한자표기 대로 내려오면서 지명이 굳어졌다. 봇밭골 서쪽 송림동 지명도 원래는 솔골 솔밭골 이름에서 기원되였는데 한자로 松林洞으로 새긴 점을 감안해보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룡정시 동애골 봇밭골 지명도 오늘날에는 화전골(桦田沟)로 표기되여있지만 원래는 봇밭골로 불리여왔다. 세월이 흘러 오랜 시간이 지나 봇나무 밑에 날아온 가둑나무(함경도 방언 참나무 일종) 박달나무 씨앗들이 자라올라오면서 이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조용히 사라져 버린 봇나무처럼 봇밭골 지명도 세월의 비바람에 이끼가 끼고 마모되여 오늘날에 와서는 판독하기조차 어려워지게 되였다.

흔히 사람들은 표준어 자작나무 하나만 맞고 봇나무 같은 구석진 말은 다 틀린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훈몽자회》 고서에는 자작(樺)의 훈이 ‘봇’으로 새겨있다. 연변과 함경도에서는 봇나무를 닮은 사촌격인 짜장낭기, 재래즈 등 토박이말들이 발달되여있었다. 이런 말들은 앙금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가라앉은 우리 력사와 문화의 화석 같은 존재인데 봇밭골 지명처럼 곧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들어왔던 말들이지만 오늘날에 와서 곰곰히 따져보면 우리 땅을 묵묵히 일궈왔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되돌아보게 된다. 흩어진 이들 삶을 하나하나 반추하여 봇밭골 땅이름에 또박또박 적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명 하나를 옳바르게 쓴다는 의미를 넘어 그 옛날 선인들의 따스한 감성을 마음속 깊이에 새겨넣어 우리 삶에 온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생명력을 지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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