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구 / 본지 편집위원 ]


지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제8차 세계한상대회’가 열렸다.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를 간직한 그곳에 1,100여명의 재외동포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곳 인천은 1902년 12월 22일 첫 이민 121명이 제물포항에 모여 이민선 겔릭(Gaelic)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 항으로 떠난 곳이다. 이들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1902년 8월 20일 이민전담기관인 ‘수민원’을 발족하고 총재에 민영환을 임명하여 모집된 이민자들 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초라했던 인천항은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이면에는 재외동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깃들여 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세계 각처로 이민을 떠나 꿈과 희망을 앉고 조국을 그리며 머나먼 낯선 타국 땅에서 온갖 설움과 핍박을 받으면서 성공의 길을 닦기까지 이들의 삶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성장으로
2003년 시작된 한상대회는 8년째를 맞이하면서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아직 내국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매년 성장되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상대회를 통한 경제적 부와 성공을 모색하는 기회를 창출하고자 한다. 그만큼 재외동포나 내국민 모두 한상대회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상의 미래와 재외동포의 민족자산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상대회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보다 앞서 ‘세계화상(華商)대회’를 치루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중화권 화상(華商)들은 이미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화교들 특유의 혈연과 지연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상호 단결력과 치밀한 조직력으로 1970년대 동남아 국가조직을 형성하였고, 1980년대 북미와 유럽으로 확장하며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들의 글로벌화된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강화되고 있다.

내국인 중심의 한상대회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국인들이) 한상대회를 통해 유익을 얻기 때문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겠냐”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대회 관계자의 말은 한상대회에 대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내국인이든 재외동포든 구분하지 않고 형식적 실적만을 따지는 것이라면 무역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상대회는 양적인 성장에 매달리다보니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했고, 더군다나 정치인들의 참여에 지나친 신경을 쓰고 의전에 몰골 하는 인상을 준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이번 한상대회 개막식에서 언급한 “양적성장을 넘어 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 말의 실행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는 길은 네트워크뿐
화상(華商)들이 중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고, 세계화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과 대만 정부가 화상들에게 경제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상들의 기대수준을 채워주는 글로벌 화된 네트워크는 그들의 결속력과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잘 갖춰진 인터넷 기반은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미디어 매체와 인터넷은 한상을 세계화하는데 참으로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제8차 세계화상대회

화상들을 묶는 강력한 힘은 아무래도 그들의 정체성이 아닌가 싶다.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와 중국어의 사용은 화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한인들을 네트워크로 묶을 수 있는 도구로 미디어 매체와 인터넷이 있지만 구심점이 될 만한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숱한 외침과 역경을 뚫고 존재하며 지켜온 ‘한민족(韓民族, 한겨레, 배달민족)’ 또는 면면히 흘러온 홍익(弘益)정신이 정체성일수도 있다.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한글(언어)교육과 민족(역사)교육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어째든 ‘한상의 세계화’와 한상의 살아남는 길을 위해 세계한인을 하나로 묶는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한인 네트워크 통합이 시급한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네트워크의 구심점을 찾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재외동포재단의 세계한인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마인드를 촉구하며, 비전 있는 정책이 수립되길 바라는 것이다.

한상(韓商)과 화상(華商)의 전략적 제휴도 필요
중국과 대만이 화교들을 놓고서 경쟁하듯 정책을 펴는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화교자본의 중국 유입은 실로 엄청나다. 중국 투자의 50%이상이 화교자본이라고도 한다. 현재 전 세계에 3조 달러가 넘는 화교 자본이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도 지속적으로 화해무드로 가고 있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대만이 중국과 하나 되었다는 평가도 들린다. 이와 같은 역할에 화상들의 역할이 작용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글로벌 화된 화상을 통해 중국이 미국의 견제 세력으로 등장 한지 오래다.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도 무시 못 할 상황에 있다. 지난 2008년 4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 차이나머니는 1조8천억 원의 주식을 순매수 했다. 5월초까지 미국과 영국이 15조원을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2~3년간 국내에 들어온 단기외채 중 중국계 비중은 5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작년 말 금융위기 때 위기를 더 조장한 것이 중국계 자금이라는 악성 루머도 있었다. 향후 중국계 자금이 우리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과거보다 훨씬 강도가 클 것이다.

4,000만 명에 이르는 화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한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문제는 국가브랜드강화위원회가 10대 추진과제로 설정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 2005년 화상대회에서 노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은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2013년까지 ‘정보 전략계획(ISP) 수립’과 ‘통합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일부 확보하여 추진하기로 되어 있다. 재단이 이 사업에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전략적으로 계획을 철저히 세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을 위한 재단의 전문 인력의 확보와 인적구성면에서 보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문가나 뚜렷한 목표 없이 형식에 치우쳐 실행하다보면 실효성이 없는 무용지물의 예산 낭비 사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 나름대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위한 전략과 방안을 가지고 있겠지만 또 하나 덧붙인다면 중국의 ‘화상’이나 인도(印度)의 ‘인상(印商)’들과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아닐까 싶다. 그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겠지만 우리 한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품질을 그들의 자본력과 결합한다면 윈(Win)-윈(Win)이 될 것이다.

북한에서 개최되는 한상대회를 꿈꾸며
세계한상대회는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 경제인들과 국내 기업인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여 상생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나기기 위해 마련된 국제 비즈니스 컨벤션이다. 그동안 양적인 성장을 도모해 온 한상대회가 중국의 ‘화상대회(華商大會)’나 인도의 ‘인상대회(印商大會)’보다 경쟁력 있는 대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시회 못지않게 세계한인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

지난 9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남북이 통일되면 30~40년 뒤에는 국내총생산(GDP)이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통일한국, 북한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라는 보고서에서, 남북이 점진적 통합을 이룰 경우 1인당 소득은 2025년 세계 3위, 2050년 세계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자원과 숙련된 노동력이 남한 자본과 기술이 결합할 경우 이에 따른 시너지효과, 생산성 향상과 통화가치 상승 등을 남북 경제 통합 효과의 3가지 요소로 꼽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남북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화해무드 조성은 시급하고도 필요한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한민족의 대단합을 이루는 한 방편으로 북한에서의 한상대회를 희망하는 것이다. 요원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북한에서의 한상대회 개최는 재외동포는 물론 국내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대회 실적 못지않게 그 상징성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북한을 아우르는 부분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물론 북한의 태도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