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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판세 그리고 붙들이
허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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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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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운 / 재중칼럼니스트]

   
 

옛적에는 한집에 자녀가 5~6명은 보통이고 많게는 10명 남짓 되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의학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홍진 같은 역병으로 어린이들이 수없이 죽어나갔다.

그 시기 연변의 크고 작은 동네에서 한두명쯤은 누가라는 애명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누가라는 이름이 이례적으로 많이 불리여졌던 것은 불교와 칠성신앙의 성행과 관련되여있다. 염라대왕의 저승사자가 내려와 이름을 물었을 때 누가라고 대답하게 되면 죽음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불교설화에서 기원된 이름이다.

이름이 고우면 귀신이 귀한 자식인 줄 알고 잡아가니 일부러 천한 이름을 붙였다. 개똥애, 조앙돌이, 똥돌이 등 이름들이 좋은 례다. 개똥밭에서 주어온 아이라는 뜻에서 지은 개똥애, 배내옷을 입힌 갓난애를 시렁덕대에 올려놓았다고 작명한 조앙돌이, 돌과 똥이 널려있는 시골풍경이 묻어있는 똥돌이 이런 천한 이름들이 액운을 막아주고 무병장수하다고 옛사람들은 믿어왔다. 그리고 붙들이란 이름도 있었는데 아이를 저승세계에 보내지 않고 단단히 붙들어두겠다는 부모님들의 간절한 념원을 담아 작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들이 호적에 누가는 ‘육기(陸基)’, 개똥애는 ‘개동(開童)’, 조앙돌이는 ‘주동(廚童)’, 똥돌이는 ‘동동(童童)’으로 기재되어 학교에 가면 놀려대는 일이 생겨나자 차츰 개명하게 되었다.

연길현 석정공사에 판세골(지금의 동성용진 석정 중성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판세라는 말은 아이를 팔면 오래 산다는 옛 관습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때 판다는 것은 돈을 받고 건넨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에게 양엄마, 양아버지를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판세골 출신인 최창락 할아버지도 애명이 판세이다. 어머니가 아들애를 낳고 세상을 뜨게 되자 아버지가 날마다 동네 우물가에 나가 이웃 아주머니들의 젖을 먹이며 키웠다고 하여 판세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우리의 성씨나 이름이 지금처럼 한자어로 틀을 갖추게 된 것은 지난 세기 10년대 호적부 작성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년 내려온 전통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들어서서 자(子)자로 끝나는 녀성 이름들이 많아졌다. 영자, 순자, 길자, 춘자 이름들에는 일본문화의 냄새가 짙게 깔려있지만 영자는 영리한 아이로 성장하라고, 순자는 순하게 자라라고, 춘자는 봄날에 태여나 꽃처럼 피여나라고, 길자는 좋은 일이 많이 있으라는 어른들의 소망이 오롯이 깃든 이름들이다.

과거 아이를 낳으면 본가 성씨의 돌림자를 따서 붙인 것이 보편적인 일이였다. 그런데 지난 세기 40년대 말과 50년대초 역병이 성행하여 자식을 잃게 되자 작명가에게 길흉 가리어 웃돈을 주고 원래의 돌림자를 바꾸어 개명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를테면 병마를 물리치는 룡자와 장수, 영자로 돌림자를 바꾸었다.

흘러간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름들은 이제 더 들을 수도 부를 수도 없게 되였다. 오늘날 되돌아보면 약간 촌스럽고 천박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액운을 막아 자식을 지켜선 선인들 삶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려보게 된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하시면서 아픈 배를 문지르는 그런 따뜻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름들에서 우리는 전염병이 몰아치는 그 암울한 시대 한평생 자식 위해 눈물 흘리며 가슴을 조이던 애절하고 진실 된 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남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없으면 우리 모두가 함께 불행해진다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 나를 지키는 가장 좋은 습관은 남에 대한 따뜻한 배려이다. 현대과학과 문명이 바이러스 앞에서 무력하게 힘을 잃을 때 선인들의 삶에서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깨우쳐야 한다. 기침, 재채기를 할 적에 옷소매로 입을 막는 습관을 기르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물리적 거리를 두는 이 사소한 일로부터 저마다 스스로 행동에 옮겨갈 때에야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여진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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