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호 / 통일일보 서울지사장 ]


남북 분단의 비극,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을 꼽자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이별일 것이다. 남북 대화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의제에 오르는 까닭은 6.25동란 이후 生死를 모른 채 살아가는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 개성공단 북한여성근로자(사진출처 : 네이버 뉴스)

남북한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자 분단의 또 다른 비극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이다. 현재의 시스템하에서 남북사람들은 아무리 절절한 사랑을 하더라도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137일간 북한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 풀려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 사건. 북한이 유 씨를 억류한 직접적 이유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북한여성 이 모 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25일 한국 정보당국이 공개한 유 씨 사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 씨는 편지에 김정일 비판, 탈북 권유와 방법 등을 적는 바람에 북한에 체포됐다.

그런데 조사기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北女를 향한 南男의 간절한 사랑이 숨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 씨는 1998년 리비아 건설현장에서 만난 북한 여성 鄭 모씨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鄭 모씨가 관리원에게 적발돼 북한으로 소환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만 했다. 그 후 현대아산에 취업한 유 씨는 2003년 금강산 파견 근무를 할 때 정 씨와 같은 고향의 북한 사람에게 鄭 씨의 근황을 물었다고 한다. 유 씨가 2005년부터 개성공단에서 일하며 만난 이 모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였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유 씨의 北女와의 만남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至高至純의 사랑으로 보인다.

작년 봄에도 북한의 금강산 관광특구에서 일하던 30대 후반의 南男이 20대 北女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는 금강산특구내 전통음식점에서 일하던 北女와 2년여 동안 연애를 했고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신청했던 것이다. 북측 금강산관광특구관리소가 상부기관에 이 문제를 알리고 승인을 요청하고 기약 없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7월 북한 군인이 남한 금강산관광객을 총으로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관광은 무기한 중단되었고, 둘은 이별할 수 밖에 없었다. 남한 뿐 아니라 북한 관리들도 모두 알던 금강산 남남북녀(南男北女)의 공개된 사랑은 해피엔딩을 맺지 못하고 잊혀져갔다.

3년 전 개성공단 현지 취재를 갔을 때 ‘남북인간의 사랑이 일어나면 어찌될 것인가 큰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이고, 여성들은 대부분 북한 출신들이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남쪽 남자가 잘 생기고 똑똑하며, 북쪽 여자가 미녀라고 불러왔다. 한반도의 세기를 넘어선 이상형이 바로 南男北女인 것이다. 사랑은 국적도 인종도 이념도 종교도 초월한다고들 하는 데, 언어가 바로 통하고 혈통도 같은 남녀가 로맨스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南男北女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허용하는 일은 어쩌면 통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남과 북이 부부가 되는 것만큼 빠른 이해와 화합이 있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먼저 북한인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