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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차별’과 ‘자부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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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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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영 도쿄      특파원(중앙일보)
그를 만난 건 7월 말 여름 휴가지인 홋카이도에서였다. 렌터카 회사 직원인 그는 차를 반납한 나와 가족을 아사히카와(旭川) 공항까지 데려다 줬다. 차 안에서 그는 내게 “한국분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한국 사람이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3대째 이곳에 사는 한국인 3세”라고 했다. 한 번도 한국에 가보지 못했다는 그의 한국 이름은 도회태(都會泰). 그의 할아버지는 식구들이 조선인이라는 멸시를 받는 게 걱정돼 일본인으로 귀화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한국어를 쓰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한국사람이지만 그는 철저히 일본인으로 자랐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내게 “한국은 어떤 나라냐. 한류 드라마를 만드는 한국 문화의 저력은 뭐냐”며 고국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비행기로 향하는 우리 가족을 마지막까지 배웅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도쿄에서 만난 50대 택시 기사 요시이케(吉池)도 그랬다. 재일 한국인 2세인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끔 친척들을 만나러 부산에 간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를 대신해 친척 모임에 참석은 하지만 그는 부산에서의 경험이 늘 서먹했다. 자신의 처지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그렇듯이 그의 부모 역시 먹고 살기 빠듯한 형편 때문에 자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는 “어릴 때는 내 뿌리가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지, 또 조국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왜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도쿄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다양한 계층의 재일동포들을 만나고 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있지만 대부분은 빠찡꼬점 종업원이나 부모의 가게를 물려받아 장사를 하는 이가 많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묘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생김새는 큰 차이가 없지만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과 멸시의 눈길을 받았던 재일동포 2·3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적지 않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민단(民團)이 지방참정권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에선 매년 1만 명이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것도 현실이다.

한 가지 변화라면 우리나라가 경제·사회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삼성을 비롯한 우리 기업들의 비약적인 발전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했다. 올 초 권철현 주일 대사가 민단과 함께 재일동포 2·3세를 대상으로 ‘우리말 사용하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불행한 과거사의 희생자인 재일 한국인들이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지원해야 한다. 이번 주말 도쿄 롯폰기(六本木)에서 열리는 한·일 축제한마당도 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행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 09.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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